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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교동에서 만나는 최부자집의 한옥 미학

by 하루메모 2026. 1. 24.



경주 교동에서 만나는 최부자집의 한옥 미학은 경주의 오래된 마을 풍경 속에서 생활 한옥의 품격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 고택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진 가풍과 공간 구성의 지혜가 축적된 장소이다.
경주 교동에서 만나는 최부자집의 한옥 미학을 통해 교동마을과 고택의 건축적 의미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주 교동에서 만나는 최부자집의 한옥 미학

 

 

 

1. 교동마을의 역사성과 최씨 종가가 자리한 배경

경주 월성 서편에 자리한 교동마을은 그 자체로 오랜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이 마을은 신라 시기 국학이라는 교육 시설이 있던 곳으로 전해지며 오늘날 경주향교가 그 터라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마을의 골목과 담장만 바라보아도 이곳이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역사적 층위가 켜켜이 쌓인 장소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마을 끝자락에 전해지는 월정교 터는 신라 시대의 석교 흔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복원 공사가 진행되면서 옛 경주의 풍경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완벽한 원형 복원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있더라도 유적을 정비해 후대에 전하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는 점에서 교동은 살아 있는 역사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유서 깊은 마을 한가운데에는 경주 최부자집으로 널리 알려진 최씨 종가가 자리하고 있다. 이 종가가 위치한 곳은 신라 시대 요석궁이 있었다는 전승이 남아 있는 자리로, 역사적 상징성이 매우 크다. 교동의 흙담과 기와 담장은 마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인데, 담장 흙 속에 신라 시대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 조선 시대 도자기 조각 등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는 이 마을이 단순히 옛 분위기만 흉내 낸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유물이 스며든 생활 공간임을 말해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최씨 종가 고택은 마을의 중심이자 교동의 시간을 대표하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경주 최씨의 고택은 대대로 이어진 종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종가댁은 여러 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오며 집 자체가 가문과 지역의 기억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오늘날 집을 지키는 이는 종손이 아닌 관리인이지만, 공간이 지닌 역사성과 가풍의 상징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또한 인근의 소종가에서는 전통주인 교동법주를 대를 이어 생산하고 있어, 교동마을이 단지 보는 유적이 아니라 생활 문화가 이어지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결국 교동마을과 최부자집은 경주의 유산이 건축과 생활 문화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2. 문간채와 곳간이 보여주는 부자집의 생활 방식

경주 교동최씨고택을 이해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요소 중 하나가 문간채와 곳간 구조이다. 이 고택의 대문채인 문간채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될 만큼 건축적 가치가 높고, 부자집의 생활 방식과 경제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문간채에는 솟을대문이 마련되어 있어 외부로부터의 위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대문 주변으로 청지기방과 여러 칸의 곳간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출입을 위한 구조가 아니라 가문의 재산과 살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공간 구성이다.

곳간마다 문의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는 단지 미적 변화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물건의 종류와 사용 빈도에 따라 문 구조를 달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주 드나드는 곳간은 편의성을 고려해 문을 구성했을 것이고, 장기간 보관하는 물품은 안정성과 보안을 고려했을 것이다. 즉 건축은 생활과 분리되지 않고 실용과 질서가 함께 반영된 결과로 나타난다. 또한 문간채의 기단과 기둥 구조는 민도리집의 맞배지붕 가구를 이루면서도 둥근 기둥을 활용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흔히 보기 어려운 사례로서 고택의 개성을 강화한다.

고방채라고 불리는 큰 곳간 건물 역시 최부자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규모가 크고 높게 지어진 곳간은 이 집안의 경제력과 생활 규모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곳간 벽은 햇빛과 통풍을 고려해 판벽으로 구성되었고, 지붕 양쪽에는 바람을 막는 풍판을 달아 기능성과 전통미를 동시에 갖추었다. 건축은 단순히 화려함을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저장과 관리라는 현실적 요구에 충실해야 했고, 최부자집의 곳간은 그러한 요구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고택의 마당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옥의 마당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가 이루어지는 지붕 없는 실내 공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넓은 마당은 여러 사람이 모여 의례를 치르고 노동을 수행하는 생활 무대였으며, 집안의 번성함에 비례해 마당의 규모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경주 최씨 종가의 넓은 마당과 대규모 곳간은 바로 이러한 전통적 생활 질서 속에서 형성된 상징이며, 이 고택이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삶의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임을 확인하게 한다.

 

 

3.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공간 연출의 세련미

경주 교동최씨고택의 매력은 문간채와 곳간 같은 경제 공간에만 있지 않다. 이 집의 사랑채와 안채는 한옥이 지닌 공간 연출의 미학과 생활 동선을 정교하게 보여준다.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정원과 사랑채가 시야에 들어오고, 한쪽에는 장대석 기단과 주춧돌을 갖춘 정원 공간이 자리한다. 본래 별당이 있던 자리라고 전해지는 이 공간은 집의 격과 여유를 상징하는 장소였으며, 마당 곳곳에 옛 석조물이 조경석으로 활용되어 오래된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연과 유물이 생활 공간에 스며드는 방식은 이 고택이 단지 보존된 유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미감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사랑채는 한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었지만, 사랑채가 지닌 본래의 구성 원리는 여전히 한옥의 정수를 보여준다. 사랑채는 대청과 온돌방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툇마루와 창호 구성에서 섬세한 장식성과 실용성이 동시에 드러난다. 사랑마루에 앉아 마당과 담장을 바라보면 집이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소통하며 사유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웃 소종가와의 경계를 이루는 담장에는 작은 구멍을 두어 두 집안이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생활의 지혜와 관계의 문화가 읽힌다.

안채로 들어가는 과정은 공간 연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사랑마당에서 안채가 한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판벽을 두고 돌아 들어가게 만든 구성은 사생활 보호와 동시에 기대감을 만드는 장치였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트인 구조를 가지면서도 실제로는 여러 채가 결합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동선이 매우 입체적이다. 중문을 지나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장독대가 시야를 가로막아 안채의 전면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는데, 이는 공간을 단계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전통 한옥의 연출 방식이다. 한옥은 직선적인 구조 속에서도 시야를 조절해 장면을 바꾸는 미학을 지니고 있고, 이 고택은 그 기법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안채는 편리성을 고려한 연결 구조가 돋보인다. 안채 뒤편의 협문은 사랑채 뒤편과 연결되어 바깥주인이 시선을 피하며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마련했고, 사당으로 이어지는 길 또한 의례 동선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이는 단순히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실제 생활과 가문의 의례를 모두 포괄하도록 계획된 집이라는 뜻이다. 후원에는 채마밭과 정원을 두어 사계절을 즐길 수 있게 했고, 안방 주변의 마루 구성은 여름철에 창을 열면 마치 정자처럼 느껴지도록 공간감을 확장했다. 결국 경주 교동최씨고택은 부자집의 규모를 보여주는 곳간과 마당의 상징성 위에, 사랑채와 안채의 정교한 연출과 생활 동선이 더해진 종합 예술 공간이라 할 수 있다.